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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의 축구

디디에 드록바 신 그이상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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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록바 신 그이상의 사나이 




[스페셜 영상 보고가셔야죠]





전설 그이상의 레전드(?) 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축구가 지니는 가치를 



극대화 하였으며 신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활약과 인생사 자체는



정말 여전히 많은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피닉스 라이징 구단주



및 프랑스 축구 엠버서더로 활약하고 있는 

디디에 이브 드로그바 테빌리  줄여서 드록바



혹은 드롭바 라고 하는데요 78년생 3월11일로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출생으로 188/91의 거구로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베빌 반

르발루아 르망에서 시작하여 갱강 마르세유 



최전성기인 첼시시절을 끝내고 상하이 선화 

갈라타사라이 이후 한시즌 다시 첼시에서 



보내고 몬트리올 임팩트 피닉스라이징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습니다. 





[두번째 스페셜 영상 캬~ 환상이다]



어린시절은 가난을 넘어서 빈곤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드록바를 키울 상황이 되지 않자 프랑

스에 있는 삼촌으로 보냈으며 현명한 



그는 너를 양육해주겠다 하지만 넌 

대학을 가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시절 꼬꼬마 바는 축구를

훨씬 더 좋아했지만 삼촌의 믿음을 따르기 



위해 대학합격증은 보여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부모와 같은 삼촌의 



허락을 받고 본격저으로 시작하였으며

무리뉴의 눈에 뛰어 첼시로 영입이 되었습니다. 




메시가 작은거냐 드록이 큰거냐...



첼시시절을 다 이야기하면 끝이 

없을테니 영상을 대체하고 이후의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터키행을 

선택한 이유는 챔스진출을 할 수 



있어서라는 매우 간단한것이 이유

였으며 데뷔전에서 득점을 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프리카

월드컵 예선 대표팀명단에 들지 못했



습니다. 이는 노쇠화 전보다 못한 기량

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은 역시 드록바

라는 칭찬이 나올 수 밖에 없었으며 



축구팬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멋진 

세러머니도 볼 수 있었습니다. 




1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몬트리올 임택트와 

계약을 하였으며 17년 3부리그 피닉스 라이징과 



계약을 맺고 여전한 클래스로 데뷔전 득점을 

만들어냈고 이후 선수로써의 은퇴를 하였습니다. 



국대에서의 능력도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우선 코트디부아르 최다득점자로 06독일



월드컵에서는 간신히 본선진출을 하였으며 

여기서 그 멋진 멘트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1주일동안 코트디부아르는 

조용해졌으며  아무도 멈출 수 없을것



같던것을 멈춘 그래서 신이라는 닉네

임이 생겼습니다. 플레이스타일은 괴물



같은 피지컬에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 

프리킥 능력까지 공격수가 갖추고 있어야



할것들에 추가해서 더 덤으로 갖고 있는 

시장에서 콩나물샀는데  생선 파 마늘 모든



것을 주는 믿지 못하는 상황과 같았고 코트디

를 드록國(나라국) / 드록神 이라고도 표현



합니다. 삶이 마치 한편의 영화였고 드라마

보다 더한 스토리였고 우리눈에서는 다소 



멀어진 선수이지만 여전히 잘되기를 

축구팬으로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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