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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성수대교 붕괴사건 1994년 10월 21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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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사건 1994년 10월 21일 기억하자 



서울도심 한가운데에서 다리가 무너졌다

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요 



오래된 사건이지만 당시사람들  저도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함께  뻥치지마~ 라고 하였을정도로 



믿기지 않았고 뉴스를 튼 순간 믿기지 않았습니다

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다리 중앙



부근이 무썰듯이 잘라진것으로 삼풍 와우와 함께 

큰 인명피해가 발생된 사고로써 안전불감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써 사망자수는 

32명으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개요  도대체 어떻게된거야?



당시 문제가 있던 부분이 운전자들에 의해 

목격되고 신고가 들어갔지만 응급조치만 시행



되었습니다. 사실 조금 문제가 있어도 다리가

무너질까 하는 부분은 실상 상상으로도 어려운



부분이죠 결국 오전 7시 48분 등교시간 및 출근

시간으로 차량의 이동이 많은시기 성수대교 붕괴


<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고 총6대의 차량과 49명의

탑승자가 추락하였고 여기서 사망자는 32명이 



되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의 경우 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무학여중 , 여고학생이 꽃다운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공식발표에 의하면 원인은

우선 용접 결함과 검사 미흡 그리고 뉴스를 통해 알게된



부분 바로 볼트가 손으로 뺄 수 있을정도로 허술하게 

구성이 되어있으며 피로균열로 인해 유지관리가 미비 



하였고 급속으로 증가하는 차량의 통행량에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한것이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고 그 이후 



통행량이 많은 시점에서 주요 다리가 끊기게 되면

당장 발생하는  교통체증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당시 대중교통의 협조와 성숙된 시민의식 그리고 우회

도로의 설정을 통해 큰 문제없이 해결되었습니다.



이후 전국의 주요 건물들이 안정평가를 실시하였고 

개축 및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 전체의 80%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에 양화 한남 광진교 역시 

전면보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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