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의 축구

펩 과르디올라 선수시절 얼마나 잘했을까

세르지오장 2018. 4. 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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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 선수시절 얼마나 잘했을까 




*일단 스페셜 영상부터 보세요*



축구팬들에게 영원한 떡밥 그리고 

국내팬들이 즐겨하는 콜로세움중의 



한가지는 top5 혹은 4 스트라이커 미드

필더 이런걸 가지고 싸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실제로 우리가 

라이브로본것과  후에 영상으로만 보는



것의 간극이 존재하고 당시의 전술 상황

등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지금의 



누구와 비교해달라 하는것은 무리가 있

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깔끔하게 이번시간은



펩 과르디올라 선수시절 내용에 대해 조금

심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감독으로 세계 최정상은 물론

섬피엘 분데스리가까지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서 오히려 저는 선수시절이 

언급되지 않고  평가절하 당하는 느낌까지



드는데요 우선 71년 반백년을 앞두고 있으며

스페인 국적 카탈루냐출신으로 180/76 



수비형 미들로써 바르샤에서 데뷔하여 브레

시아 칼초 로마 알 아흘리 도하 그리고 마지막



에는 05/06시즌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에서 

펩 과르디올라는 마감하였습니다. 



"내가 선수시절 이따만큼 잘했쩡~"


-무리뉴와의 전설의 샷-


이후 07/08시즌부터 바르샤B를 시작

으로 그다음시즌 부터 A팀을 그리고 



뮌헨 - 맨시티까지 가는곳마다 우승은

물론 다양한 기록을 만들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낼뿐입니다. 국대커리어는 47경기 5골

이며 풀네임은 주세프 페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

라고 하네요 



바르샤 유스에서 성장하였고 당시

감독 요한 크루이프에서 수비쪽이아닌



다소 플레이메이킹이 강한 수미로 활동을

하였고 6번의 리그우승과 2 번의 코파델레이 



기록이 있습니다. 챔스 우승도 하였으며 당시

인기는 폭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니에스타등과 비교하는 분들도 있지만

다시말씀드리지만 무의미 합니다. 



화려한 경력과 다르게 말년의 경우 운이 

따르지 않았는데요 바로 유리몸이라는 단점



하나때문에 11시즌을 멍멍이처럼뛰고 이적을

하게되었으며 당시 퇴물 예전 레전드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당시 나이 30세 지금생각

해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는데요 당연히 



아직 괜찮은 나이 뉴케슬부터 리버풀 인테르

등에서 오퍼가 들어왔으며 실제로 아무리 나쁘게



봐도 빅클럽에서 못뛸정도의 최악은 아니었

습니다.  무슨생각이었는지 새로운 전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탈리아를 택했고 지금브레시아

칼초는 뭐야~ 하겠지만 당시에는 로베르토 바지오가

있던 




최고성적 7위를 기록한 분위기가 상당히 

업된 상태였으며 펩 과르디올라가 뛴 단 



한시즌은 14위를 하고 로마로 이적을 

하지만 시즌 8위로 추락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다소 난해한 의혹으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최악의 영입으로 뽑히기도 하였으며 



결국 브레시아로 다시 돌아가 리그 10위를

기록하고 또다시 빅클럽의 오퍼를 거절하고 



중동으로 간후 지금은 멕시코 2부인 시날로아

가게된후 감독일을 배우게 됩니다. 




플레이 성향은 수비형 미들로써 세계적인

선수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굳이 비슷한 스타일을



꼽자면 마테우스 둥가 레돈도 정도로써 수미

임에도 수비보다는 정확한 킬패스를 위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았으며 호마리우 스토이치

코프 베히리스타인에게 정확한 볼배급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선수시절이 보다 

더욱 화려하고 풍성하지 못했던것은 바로 유리몸



게다가 말년에 슬럼프에 빠지고 펩 과르디올라의 

패스를 받아야 본인이 살아나는 스타일인데 받아



먹는 이가 없으니 결국 시대의 변화와 함께 

안타깝게 저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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